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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KIA 타이거즈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거포 듀오를 거느렸다. 4번 최희섭-5번 김상현을 앞세운 타이거즈는 12년만에 정규시즌 우승과 한국시리즈 제패를 이뤄냈다. 그해 최희섭은 타율 3할8리, 33홈런, 100타점을 올렸고, 김상현은 타율 3할1푼5리, 36홈런, 127타점을 기록했다. 2007년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고 돌아온 최희섭은 KIA의 대표타자로 올라섰고, 김상현은 정규시즌 MVP에 선정되며 오랜 무명의 설움을 떨쳤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선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물론 부상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듬해 최희섭은 126경기에서 21홈런, 84타점으로 기세를 이어가는 듯 했지만, 2011년부터 무릎, 발목 부상이 이어지면서 한 번도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했고, 2013년 9월 왼쪽 무릎 수술을 받아 2014년에는 재활에만 매달려야 했다. 그 사이 KIA는 최희섭이 심신에 걸쳐 회복을 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전력외'로 분류하기도 했다. 

김상현 역시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2010년 4월 무릎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두 달이나 엔트리에서 제외되며 어려움을 겪었다. 한껏 높아진 장타 감각을 되살려 그해 79경기에서 21홈런을 때리는 괴력을 발휘했지만, 이후 타격감은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결국 KIA는 2013년 5월 효용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한 김상현을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해 버렸다. 

2009년 이후 6년의 세월이 흘렀고, 새 시즌이 시작됐다. 지금 두 선수는 약속이나 한 듯 힘차게 방망이를 돌리고 있다. 최희섭은 지난 28~29일 광주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개막 2연전서 6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다. 29일 경기에서는 4-6으로 뒤진 7회말 정찬헌을 상대로 우월 홈런을 터뜨리며 추격의 불씨를 당겼다. 최희섭이 1군서 홈런을 친 것은 2013년 7월 26일 창원 NC 다이노스전 이후 611일만이었다. 선구안과 파워가 2009년을 연상케 했다. 최희섭은 지난해 말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 훈련에 자청해서 참가한데 이어 올초 전지훈련서도 가장 모범적인 훈련 태도를 보이며 부활 의지를 드러냈다.

최희섭은 최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구단에 빚진 게 너무 많다.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 개막전을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다"며 부상없는 한 시즌을 보낼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것이 결국 팀을 위하고 자신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최선의 길임을 잘 알고 있다. 최희섭이 5번타순서 자리를 잡음에 따라 KIA는 브렛 필-나지완-최희섭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중심타선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김상현은 지난 28일 부산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 2연전에서 홈런 2개를 포함해 5타점을 올리며 부활의 신호를 힘차게 알렸다. 김상현이 한 경기서 2개의 홈런을 친 것은 2011년 6월 23일 SK전 이후 약 3년 9개월만이다. 그만큼 타격감이 6년전 수준으로 올랐다는 의미다. 김상현은 이날 경기후 "신생팀의 절실함으로 열심히 준비했다. 시범경기서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시즌 들어와서 페이스가 올라 다행"이라고 했다.

김상현은 일본 미야자키와 가고시마에서 실시한 전지훈련서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실된' 땀방울을 흘렸다. 전지훈련서 입국하던 날 그는 "선수생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뛰겠다"며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팬들은 계속해서 두 선수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최희섭이 새롭게 각오를 다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김기태 감독과의 소통을 꼽는 이들이 많다. 최희섭은 "지난해 11월 마무리 훈련에 참가했을 때, 1군에서 시즌 개막을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기회를 주신 김기태 감독님, 구단에 꼭 보답을 하고 싶다. 실력과 상관없이 감독님과 코칭스태프, 구단이 참 많은 배려를 해 주셨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김상현 역시 조범현 감독과 재회하며 부활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조 감독은 지난해 11월 신생팀 특별지명 때 SK의 보호선수명단을 받아들고는 주저없이 김상현을 선택했다. 조 감독이 KIA 지휘봉을 놓은 2011년말 이후 3년만에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상현은 "기회를 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린다"고 했었다.

30대 중반인 최희섭과 김상현은 지금 절박한 심정이다. 마음을 받아주는 감독에게 보답하고 싶은 심정 또한 같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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